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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방선거 출마 후일담 - 1

법 없는 이야기

by 김양환 2015. 1. 11. 08:46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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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지난 201464일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나는 서울시의원 종로구 제1선거구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39%를 조금 넘는 득표율로 낙선하였다.

 

  내가 위 선거에 출마를 하게 된 경위는 아래와 같았다.

 

  나는 변호사의 전문분야에 관하여 고민하던 중 그 결론 중의 하나로 여긴 환경 분야에 대하여 공부하고자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도시행정학과 환경정책전공 과정을 택하였는데, 그 후 위 대학원 과정에서 환경 분야에 대하여 배울 기회는 기대보다 적었고 대신 도시행정 일반에 관하여 더 많이 배우게 되었던바, 그 과정에서 지방자치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.

  나는,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어야 하고, 그렇다면 이 땅의 의사결정을 위하여 직접민주주의가 이상적이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로 대의제가 주류를 이루는 현 상황에서, 민의가 최대한 발현되려면 풀뿌리 단위 즉 지방자치 단위에서의 민주주의 성숙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, 우리의 지방자치는 아직 여러 면에서 부족한 것이 많은 것이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보았다.

  그러한 일련의 부족한 면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, 행정이 법대로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 처방의 하나일 수 있고, 내가 법률가이기에 지방자치 행정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그 부분에 대한 성과를 도출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.

 

  또한 몇 분의 현역 서울시의원을 비롯한 정치 현업 종사자들이 대학원 동기로 계셨던바, 그 분들과 어울리고 그 분들로부터의 조언과 권유를 접하면서 자연스레 현실정치 직접 참여에 대한 생경함이 감소된 점도 내가 지방자치단체 의회 의원 출마를 결심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고 되새긴다.

 

  아울러 몇 차례의 해외여행 중 얻게 된 해외여행을 보더라도 그 나라라기보다 더 정확히는 그 나라의 특정 도시를 여행하며 느끼는 것이 아닌가?’라 개인적 사유(思惟)를 통하여 지방자치단체로서의 도시가 대단히 유의미한 생활공동체의 단위라고 평가하게 된 점 또한 위와 같은 출마를 매력적으로 생각하게 한 유인요소였던 것으로 생각된다.

 

  그리하여 2013년 봄 나는 다가오는 서울시의원 선거에 출마를 하자!’고 결심하게 되었다.

  그런데 무릇 처음부터 준비된 것이 있을 수 없듯, 나 역시 종전에 내 인생에서 현실정치를 전혀 생각해 본 일이 없었기에 당시 출마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.

  다만 나는 각론적으로는 많이 부족하나마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균형과 내실의 도모가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이 필요하고, 이를 위하여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합리적이고 대중적인 방법으로 성과를 도출하여야 한다.’는 나의 정치지향성에 입각하여 볼 때 새누리당은 선택의 대상일 수 없고, 합당 이전의 민주당은 과거의 경위와 관계없이 당대의 대안이 될 수 없고, 그 밖에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당들은 방법론적으로 나와 부합하기 어렵다고 느끼던 차에, 당시 신선한 인물로 부각된 안철수 현 국회의원이 온화함 속에서도 저력있게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맥이 통하는 가치를 추구해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기에,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실행위원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고, 그것이 2013년 가을 현실정치에 내딛는 나의 첫 발걸음이었다.

 

  그런데 그 후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통한 현실정치 관련 현안 및 시사점 공유는 전무하다시피 하였고, 나 또한 나대로 본업인 소송 수행에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출마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 내지 못한 채 시간을 만연히 흘려 보냈다.

 

  해가 바뀌어 2014년이 왔지만 2013년 가을부터의 양상에는 변함이 없었고, 그러다가 같은 해 2월경 전국 동시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었다.

  주변에서는 빨리 예비후보자 등록을 하고 선거운동을 시작하라는 권유가 있었으나, 나는 그 때까지도 구체적인 청사진이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기에 선뜻 예비후보자 등록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.

  그러던 어느 시점에 뜻을 접을 생각은 없지 않은가? 이제 시작을 하고 부딪치자!’고 결정한 후 예비후보자등록을 하려 하는데, 바로 그 즈음 예고없이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의 합당이 발표되었다.

 

  그 발표로 나는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안철수 의원의 현실정치와 연계된 조직으로 발족된 것이었다면, 합당이라는 의사결정에 관하여 최소한 사전에 정보제공은 받는 것이 절차의 면에서 합당한 것 아닌지?’라는 회의가 일었지만, 합당으로 더 좋은 결과가 도모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‘막연한 긍정의 시각을 견지하며 이윽고 예비후보자 등록을 필하였고 그 때가 20143월 중순경이었다.

 

  그런데 예비후보자등록 후로도 나는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왜냐하면 본업인 소송 수행을 소흘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결국 소송 준비를 하다가 요행히 여유시간을 확보하면 수줍은 모습으로 홀로 거리에서 유권자들에게 명함을 교부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 선거운동의 전부였다.

 

  그것도 잠깐이었고,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 416일 국민적 참사가 발생하였고, 나는 그 사고 후 며칠간 주저하다가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애도의 기간을 갖기로 결론을 내렸다.

 

  시간이 다시 흘러, 선거를 안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정당 차원에서 추스르고 선거운동을 재개하는 상황이 왔다.

  이후 나는 같은 서울시의원 선거 종로구 제1선거구 새정치민주연합 공식 후보 자리를 놓고 구 민주당 계열 인사와 경선을 거쳤고, 거기서 승리하였다.

  경선 방식은 100퍼센트 여론조사였다.

  나는, , 고등학교를 다니고 최근까지 거주하며, 직장까지 장만한 지역에서 출마를 한 것이었고, 그러한 유대가 원인이었던지 일천한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경선 승리라는 은혜를 입을 수 있었다.

  그것이 같은 해 5월 중순의 일이었다.

 

 

  이후 사정은 매우 급했다그간 선거운동을 충분히 못한 탓에 상황은 많이 걱정스러웠다. ‘도대체 김양환이 누구냐?’라는 것이 전해 들리는 나에 대한 지역의 반응이었다.

  그리고 경선 승리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식 후보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당 지역조직을 접하고 느낄 수 있었던바,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이 합당을 하면서 표방되었던 당 대 당의 안배 개념은 지역 조직에서는 애초에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. 왜냐하면 안철수 의원 중심의 정당적 지역조직은 아직 태동하지 않았기에 합당으로 탄생한 신당의 지역조직은 100퍼센트 기존 민주당원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

  즉 당시의 합당은 적어도 지역조직 차원에서는 중앙조직에 한 사람 합류함으로 수반된 명칭 변경에 불과한 것이었다.

  위와 같이 합당이라고 부르기에는 일방적인 지역 조직 구성 속에서, 물론 궁국적으로 내 책임임을 부인할 수 없겠으나, 나는 새정치민주연합 공식 후보이면서도 같은 당 식구가 아닌 것 같다는 소외감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지 못했다.

 

  2주가 채 안 된 잔여 선거운동기간 동안 나는 나름 노력경주했으나 시간활용, 조직 등 여러 면에서 부족함을 노정했고, 결국 현실정치의 험난함을 제대로 경험하며 지난 64일 투표 결과 낙선의 아픔을 맛보게 되었다.

 

 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었다.

 

  다음에 계속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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